대선정국이 안개속을 달리고 있다. 지지율 1위인 이명박이 BBK 폭풍의 한가운데 몰리면서 점점더 미궁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2위인 이회창도 BBK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고, 정동영은 지지율 답보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 선거가 한달도 안남은 상황에서 이렇게 갈피를 못잡는 것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안개정국이다.
유권자들이 선택의 결단을 못내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각 후보의 정체성에 대한 모호성 때문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후보에 대한 인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이에 따라 야기되는 혼돈이 선택에 대한 확신을 못주고 있다. 번지없는 주막이 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기반이 상이한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이 용이한 반면, 한국은 가면 갈수록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 일정수는 이명박이 정통보수세력을 자임할 수 없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이 보수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안보관이 허술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회창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박근혜와 이회창은 이명박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외연을 확대하려는 전략에서 볼 때 독배일 수 있다.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신당 지지자들 중에는 민주당과의 합당시도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민주당이 합당세력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은 정통야당의 맥을 이어온 세력이기도 하지만 지역주의에 기생해온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당과 민주당의 어색한 조합은 정동영과 이인제의 정체성이 엷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합당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동안의 논란만큼이나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보수진영 30%, 진보진영 30%가 존재하며, 양측을 지지할 수 있는 40%가 존재하는 정치시장이다. 결국 40%의 득표를 얻으면 승리할 수 있는 시장에서 정체성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스스로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못하면 자신의 표밭도 잃고 중간지대의 유권자들도 유인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회창을 제외한 이명박, 정동영, 이인제 등은 지지자들로부터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 정치구도가 흘러가는 양상에 따라 자칫 내부의 위기와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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