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도 대선경선 레이스에 접어들면서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그 진앙지는 원조보수임을 자처하는 김용갑의원,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과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원희룡의원, 고진화의원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노선 논쟁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한꺼풀 뜯어보면 한나라당의 주류와 비주류의 오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우선 기득권 이익을 대변하는 수구적 보수의 흐름이 있다. 저 멀리서는 박정희, 전두환 등의 군부세력에서 김용갑, 정형근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육사, 국정원 출신이 많고, 기본적으로 북한을 협력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냉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흐름은 한나라당에서 외연확대를 위해 영입한 인사들이다. 군사정권때 관료출신들 혹은 시민단체, 운동권 출신들이 그들이다. 현재 손학규, 김문수, 고진화, 원희룡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 두 흐름은 서로 엎치락 뒤치락 주도권을 번갈아 잡아왔는데, 주로 선거때에는 영입인사들이 전면에 나서고, 선거가 끝나면 원래의 색깔로 되돌아 가곤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에서는 보수 지지층 보다는 개혁 지지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정형근, 김용갑은 감표요인만 될 뿐이다.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한나라당의 주류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때로는 색깔론으로, 때로는 퍼주기 논란 등으로...
그런데 선거때면 조용하던 김용갑이 최근 목소리를 높였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발언인지, 어떤 후보캠프의 지원 때문이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몇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용갑의 발언
"한나라당 대다수 의원들은 원희룡, 고진화 의원의 경선 출마를 보고 당내 경선이 희화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한나라당의 이념과 정체성, 노선에 역행하면서 당론에 반대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걸핏하면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함께 반(反) 한나라당 입장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이나 하고 북한에 맞장구치는 인물로 비쳐져 왔다. 대선이 어린애 장난도 아닌데 이들이 나와 경선 분위기를 흐리게 될까 걱정이다. 두 사람은 당과 국민을 위해 이제 그만 내려오기 바란다"
첫째, 그만큼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신이 선거판에 뛰어들어도 한나라당이 이길 정도로 대세는 이미 한나라당이라는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대선 이후의 지분에도 어느 정도 고려가 있을 수 있다. 만약 김용갑, 정형근 같은 극우보수세력이 전면에 나서고도 한나라당이 이긴다면 다음 정권의 나침반은 더욱 수구보수로 기울어질 것이다.
둘째, 수구세력의 수세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신호탄일 수 있다. 최근 인혁당 사형수의 무죄판결, 긴급조치 판사들의 명단 공개 등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처방식에 김용갑은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사실 선거 때가 아니었다면 한나라당은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였을 것이다. 고작 사학법 가지고도 전국적인 거부운동을 벌였는데, 유신의 치부가 까발라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에 침묵만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후보가 일해공원에 대한 입장유보를 했 듯이 개혁세력의 표를 의식해 한나라당은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원조보수답게 경종을 울릴고 싶었을 수 있다.
셋째, 어느 후보 캠프의 전략일 수 있다. 선두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지지율을 만회해야 한다는 위기감, 정체성 논란을 통해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원희룡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며, 현 시점에서 충분히 심증이 가는 대목이다. 특히 원희룡은 지난 정수장학회 논란 이후 벌어진 국가정체성수호특별위원회의 색깔론이 펼쳐진 것처럼, 인혁당 이후 정체성 논란이 갑자기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한나라당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경선다운 경선을 치르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이회창 대세론 같이 결과가 뻔한 경선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경선은 여권의 후보가 부각되지 않은 가운데 당내에서 3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치열해지는 만큼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이 좀더 첨예화될 전망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나라당의 이념 스펙트럼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 첫 희생자가 원희룡이 될지, 손학규가 될지, 아니면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