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고민이 많다. 우선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구독자의 감소는 광고매출 축소로 이어진다. 광고수익 감소는 경영악화로 치달아 결국 폐간하거나 기자들을 정리해고하는 신문사들이 나오고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원인분석에 대한 말들은 많다.
"인터넷이 원흉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거부할 것인가?"
"....."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아니다, 노무현의 언론관 때문이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정권이 언론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탄압했는가?"
"세금조사를 무자비하게 한다."
"그렇다면 연론사는 정기적인 세무조사에서 무조건 예외로 처리해야 하는가?"
"....."
신문사의 위기를 말하면서 그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한 신문사는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종이신문을 박물관에 가서야 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짜 신문의 위기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신문의 위기는 신뢰성의 위기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는 생각보다 많은 구독자 수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세계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함께 인정받고 있다. 신문기사가 공정한 팩트 위에 냉철한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기사를 인용함으로써 객관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소위 신문사의 위기가 구독자 수의 감소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문기사를 보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문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기사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특히 팩트 자체를 왜곡하거나, 팩트와 오피니언을 무리하게 연결시키거나, 맹목적인 비난을 위한 기사는 네티즌의 냉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찌라시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블로그 열풍에 힘입어 기사보다 더 나은 수준의 포스팅도 허다하다.
이제 신문이 세상을 보는 창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들 중의 하나로 바뀐 것이다. 그야말로 신문과 블로그가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신문은 신뢰도를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수구신문들이 참여정부 정책에 단세포적, 무조건적 반대를 해온 까닭에 자신이 지난날 지지했던 정책들을 반대하는 자기부정적 태도마저 보이게 된 것이다. 일단 노무현이 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이간질 시키거나 반대꺼리를 찾아내는데 미처 과거의 자신이 썼던 사설이나 기사를 뒤져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신문사가 아직 아날로그 기업인 까닭이다. 기사들이 모두 아카이빙 되어 DB검색이 가능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텐데...
노무현을 죽이려다 자신의 신뢰도 마저 갉아먹는 형국이다. 개혁정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무현으로 끝내려는 무리한 정치적 야욕이 종이신문의 박물관행을 앞당기는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원인분석에 대한 말들은 많다.
"인터넷이 원흉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거부할 것인가?"
"....."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아니다, 노무현의 언론관 때문이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정권이 언론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탄압했는가?"
"세금조사를 무자비하게 한다."
"그렇다면 연론사는 정기적인 세무조사에서 무조건 예외로 처리해야 하는가?"
"....."
신문사의 위기를 말하면서 그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한 신문사는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종이신문을 박물관에 가서야 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짜 신문의 위기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신문의 위기는 신뢰성의 위기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는 생각보다 많은 구독자 수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세계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함께 인정받고 있다. 신문기사가 공정한 팩트 위에 냉철한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 기사를 인용함으로써 객관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소위 신문사의 위기가 구독자 수의 감소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문기사를 보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문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기사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특히 팩트 자체를 왜곡하거나, 팩트와 오피니언을 무리하게 연결시키거나, 맹목적인 비난을 위한 기사는 네티즌의 냉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찌라시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블로그 열풍에 힘입어 기사보다 더 나은 수준의 포스팅도 허다하다.
이제 신문이 세상을 보는 창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들 중의 하나로 바뀐 것이다. 그야말로 신문과 블로그가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 신문은 신뢰도를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수구신문들이 참여정부 정책에 단세포적, 무조건적 반대를 해온 까닭에 자신이 지난날 지지했던 정책들을 반대하는 자기부정적 태도마저 보이게 된 것이다. 일단 노무현이 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이간질 시키거나 반대꺼리를 찾아내는데 미처 과거의 자신이 썼던 사설이나 기사를 뒤져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신문사가 아직 아날로그 기업인 까닭이다. 기사들이 모두 아카이빙 되어 DB검색이 가능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텐데...
노무현을 죽이려다 자신의 신뢰도 마저 갉아먹는 형국이다. 개혁정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무현으로 끝내려는 무리한 정치적 야욕이 종이신문의 박물관행을 앞당기는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TAG 신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